“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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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작성일25-05-19 22:43본문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미국)는 가까운 나라와 먼 나라, 우방과 적국으로부터 약탈당하고, 강탈당하고, 수탈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백악관에서 대미 무역흑자국의 수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상호관세’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약탈(loot), 강탈(pillage), 수탈(plunder)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정말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미국을 약탈했을까.◇ 미국의 최고 수출 상품은?작년 미국 무역적자는 9184억달러였다. 웬만한 중진국의 국내총생산(GDP)보다 큰 규모다. 미국은 1975년 무역흑자를 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거의 50년간 줄곧 적자를 기록했다. 규모도 점점 커져서 1980년대 초반 연간 1000억달러 정도였던 것이 최근엔 1조달러에 가까워졌다.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무역적자가 커지면 통화 가치가 하락해 그 나라의 수출품 가격이 세계 시장에서 저렴해지는 효과가 생긴다. 그러면 수출이 늘어나 무역적자가 줄어든다.하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미국 통화인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점이다. 이 세상 모든 나라가 국제 결제 통화인 달러를 갖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최고 인기 수출 상품은 달러다. 그래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커져도 달러 가치는 좀처럼 하락하지 않는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약탈한 결과라기보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강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무역적자가 미국에 주는 이득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무역적자는 미국에 큰 이득이 된다. 미국이 대규모 무역적자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돈이 미국에 유입되고 있다는 뜻이다.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국 기업이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고 3만달러를 벌었다. 이 회사는 급여 지급과 회사 운영, 투자 등에 쓰기 위해 은행에 가서 3만달러를 원화로 환전할 것이다. 3만달러를 받아 든 은행은 이 돈으로 미국 국채나 주식을 산다.한국 입장에선 수출 금액만큼 미국으로 돈이 나가고, 미국 입장에선 수입 금액만큼 돈이 들어온다. 이를 순수출(NX)=순자본유출(NC[앵커]계엄 사태를 지나고 맞은 올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은 여러 면에서 되새겨볼 것들이 많았습니다.5·18의 참상이 아직 남아있는 병원이 임시 개방되기도 했는데, 밀착카메라 이가혁 기자가 현장을 다녀왔습니다.[기자]지난해 겨울, 45년 만에 다시 등장한 '계엄령', '계엄군'.고등학생 때 5·18을 겪은 광주 시민 김용희 씨에게 12·3은 곧 5·18이었습니다.[김용희/5·18 당시 고교생 : (작년 12월 3일) 속보가 뜨더라고. 그래서 봤는데 머리가 휑하죠. 바로 5·18 생각이 나니까. 이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되살아난 비극.하지만 동시에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김용희/5·18 당시 고교생 : {5·18 때도 선생님처럼 시민들이 계엄군과 맞서 싸웠고…} 그렇죠. {12·3 내란 사태 때 국회 앞에서도…} 그렇죠. 나는 정말 감명받았어요. 그 용감한 시민들… 정말 대단하죠. 총 든 계엄군들 앞에서.]이 낡은 건물은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었습니다.아픔이 서려있는 곳이자, 시민의식이 빛났던 곳, 바로 옛 광주적십자병원입니다.이곳엔 당시 응급실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습니다.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시작하자 이곳엔 총상을 입은 시민들이 계속해서 밀려왔다고 합니다.그 수가 워낙 많다 보니까 저 응급실을 넘어서 이 복도와 그리고 다른 진료실까지 피 흘리는 시민들과 의료진이 뒤엉켜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이런 비극적인 순간에도 광주 시민들은 서로를 도왔습니다.피가 모자라다 헌혈이 필요하다. 이 소식을 들은 젊은이와 어르신까지 시민들이 모여서 이렇게 자신의 피를 나눴습니다.2014년 문을 닫은 후 11년 만에 이번달까지만 잠시 개방됩니다.오늘날의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듯합니다.[이윤주/서울에서 5·18 맞아 광주 방문한 시민 : {살면서 내가 계엄령을 겪을 거다?} 전혀 생각을 못 했죠. 아무래도 민주화가 됐고 계속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걸 겪고 나서 다시 오니까 '진짜 정말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최동환/오월 안내해설사 : 특히 12·3 사태 이후에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도 훨씬 폭넓게 올라가다 보니까 특히 외지 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