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파면에도 불구하고 1
윤석열 파면에도 불구하고 12.3 비상계엄 이후의 세상은 그 이전과 같지 않다. '어떤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비상한 감각이 평범한 조건이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통령 관저에서 집으로 돌아간 윤석열이 남긴 인사말은 '다 이기고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마시라'였고, 대권에 도전하는 나경원 의원은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을 주자고 한다. 아스팔트에서 태극기부대와 세대 간 통합을 이루었다고 자찬하는 청년 극우 집단은 '북괴, 빨갱이'를 내쫓겠다며 차이나타운을 휘젓는다. '리셋 코리아, 윤 어게인'(RESET KOREA, YOON AGAIN)의 등장은 황당함 그 이상이다. '윤석열 없는 윤석열 체제'의 반규범과 폭력성이 갖는 사회적 효과 또한 지속되고 있다.'다시 만난 세계' 속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윤석열을 파면시키면서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파면 이후의 세상은 또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지금 우리의 과제는 바로 그 '다시 만난 세계'가 어떤 세상이었는지, 그 속에서 함께 그린 새로운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사회'가 무너졌다는 감각 속에서 세상을 리셋 해야 한다면 그 방향키 역시 '다시 만난 세계'에 접속하는 것으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세계의 밑그림에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가 있다.새로운 민주주의라면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17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디지털 자유발언대 '천만의 연결'을 통해 수집․분석한 '광장의 시민이 바라는 사회대개혁'(651건)에 가장 많이 등장한 건 바로 '차별금지와 인권보장'(31%)이었다. 퇴진 광장의 시민발언(811건)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의 존엄과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비상계엄 이전의 민주주의로는 돌아갈 수 없으며,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에는 차별금지법이 있길 바란다는 발언이 계속 이어졌던 배경이다.지난 4개월여의 퇴진 광장이 '일상이 비상계엄인 사람들'의 말하기로 넘쳐났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놀랍지는 않은 결과다. 차별과 불평등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었으므로. 비상계 ‘호밀밭’에 심을 씨생강을 다듬는 나무네 부부. 6년 전 이맘때, 지금 살고 있는 인천 귤현동에 처음 집을 보러 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 동네로 들어오는 동안 밭이 펼쳐졌고, 작은 단층 빌라 옆마다 텃밭이 하나씩 있었다. 한국에도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작은 정원’이란 뜻으로 농막과 작은 텃밭을 함께 분양하는 도시농업 구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동네의 텃밭들은 계획적으로 조성된 것도 아닌데다 재개발이 진행 중이었는데, 동네 풍경을 이상하게도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건물을 짓지 않은 땅마다 누군가 텃밭을 일구고 있었고, 그런 땅이 많아 마치 빌라마다 작은 텃밭이 딸린 모습이었으니까. 안타깝게도 3기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그 많던 논밭이 공사장으로 변했고, 텃밭이었던 땅에는 건물이 하나둘 지어지고 있다. 이제는 텃밭을 할 만한 땅이 숨은 보석같이 드물어졌다.‘동네 사람’이라는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그런 땅을 쓸 수 있는 정보는 알고 지내는 이웃이 많은 진짜 동네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쓰레기 문제로 주말농장 주인 할아버지와 옥신각신하던 그날, 내 틀밭 일부분을 함께 쓰고 있던 동네 친구 나무가 뜻밖의 정보를 전해줬다. “우리 집 주변 빌라 부지에 농사지을 사람을 구한다는 팻말이 있는데 거기 한번 같이 알아볼래요? 사실 저도 쓰고 싶었는데 너무 넓어서 엄두가 안 났거든요.”나무의 안내로 단숨에 달려가 팻말에 적힌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그 땅 바로 앞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가 전화를 받고 나와 젊은 사람들이 이 땅을 쓰겠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며 연간 사용료로 25만원만 달라고 했다. 삼면이 빌라에 둘러싸여 있지만 지금 밭보다는 해도 잘 들고 평지에 땅도 넓었다. 140평 빌라 부지를 조금씩 쪼개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차장과 작은 텃밭을 분양했고, 할머니가 농사짓는 공간도 있지만 절반 정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 같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 자리에서 네고도 없이 쿨하게 입금을 마쳤다.새 밭이 생겼으니 텃밭 이사라도 가볼까?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고 마음속으로는 텃밭 이사 계획까지 마쳤지만 며칠 뒤 주인 할아버지는 쓰레기를 전부 정리하고 다시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셨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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