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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전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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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작성일25-06-15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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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전 육군 특전사 1공수여단장이 지난해 12월10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성동훈 기자 “상부와 회의하고 있는데, 대통령님이 도끼로라도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끄집어내래. 전기라도 끊을 수 없냐.”지난해 12월4일 오전 12시50분쯤, 이상현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1공수여단장(준장)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군사상황’인 줄로만 알고 국회에 출동한 이 준장은 ‘대통령님’이란 단어가 나오자 상황을 다시 돌이켜봤다. 길거리의 시민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건 소요사태가 아니고, 도발도 아니고, 우리(군인)가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그로부터 반 년이 넘은 지난 9일, 이 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6차 공판 증인으로 나왔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이 준장 기억의 왜곡 가능성을 물고 늘어졌다. 그때마다 이 전 준장은 곽 전 사령관으로부터 들은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반복해 말했다. “전기라도 끊을 수 없냐”고 하기 전 곽 전 사령관이 2~3초 머뭇거렸던 점도 계속 똑같이 설명했다.‘대통령님’ ‘도끼’ ‘전기’ 이 준장은 세 단어를 “분명히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에게 도끼가 없었기 때문에 (곽 전 사령관이) 도끼 얘기를 했을 때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해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 준장이 국회에 도착한 김형기 1공수 1특전대대장(중령)에게 지시를 내릴 때 왜 ‘도끼’는 언급하지 않았냐는 윤 전 대통령 측 질문에는 “과격한 용어라 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전기를 끊는 게 무슨 의미지? 어떤 상황이지?’ ‘전기를 어떻게 끊지?’ 등 혼란스러웠던 심경도 떠올렸다. 이 준장은 “사령관 목소리까지도 기억한다”며 단호하게 말했다.불법계엄 해제 이후 이 준장은 수첩에 ‘사령관님 전화 수신. VIP 지시로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의원 해산시킬 것’이라고 적었다. VIP, 즉 윤 전 대통령의 지시였다는 점은 글로도 남아 있었다. 이 준장은 “기억이 사라지기 전 사실관계를 정리하려고” 수첩에 메모를 작성했다고 했다. 누군가 증거를 인멸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일반 업무수사수만보는 '사진과 수필로 쓰는 만인보'의 줄임말입니다. <편집자말>[글쓴이: 민병래(작가)]"자살인가요? 타살인가요?"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이지원 조사관은 지난 4월 15일, 국군 제5사단에서 1983년에 의문사한 이윤성의 누님과 짧은 통화를 나눴다. 이지원은 1년 안팎 이윤성 사건에 매달려 이윤성이 민주화운동에 기여했다,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사망했다, 국가는 사과하고 피해 복구 조처를 해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조사보고서를 썼다. 이날 열린 진실화해위 제105차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이지원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누님에게 연락을 했으나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해 답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보니 유족의 응어리를 제대로 풀어드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성균관대 사학과 81학번 이윤성은 1983년 11월 3일, '학생의 날'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11월 6일, 신체검사도 받지 않고 동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군대로 끌려갔다. 이윤성은 2대 독자이고 아버지가 예순을 넘어 보충역 대상이나,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당시 전두환 정권은 학생운동을 두려워하여 '요주의'라고 찍은 학생을 무조건 전방부대로 밀어넣었다. 현역 입영대상이건 아니건 신경 쓰지 않았다. 보안사는 붙잡아 온 학생을 대상으로 활동 사항을 조사하고 프락치 노릇까지 강요했다. 휴가를 보내 입대 전에 활동한 조직의 정보를 빼오도록 했다. 보안사는 이를 '녹화사업'이라 불렀다.이윤성도 A급으로 분류된 지라 1983년 4월 30일 자대에서 205보안부대로 연행되었다. 그는 조사를 받던 중, 5월 4일 부대 내 테니스장 심판대에서 목을 맨 사체로 발견되었다. 제대를 불과 8일 앞둔 시점이었다. 유족은 당연히 보안부대의 고문 때문에 죽었는데 자살로 꾸민 게 아닌가 의심을 품었다. 2002년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2005년의 국방부 과거사규명위원회가 이 점을 중점 조사했으나 타살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결국 타살여부는 판단하지 않고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일어난 죽음이라고 결론지었다. 유족이 진실화해위 2기의